60,70대 머리 허연 왕년의 경제기획원, 재무부 경제부처 수장과 고위 관료들이 역시 비슷이 늙어가는 학계, 언론계 인사들과 오랜만의 회포를 푸는 모습이 여기 저기 심심치 않게 보인다. 손자들 재롱이나 즐기지 무엇 때문에 이들이 한마음으로 집결했을까. 대선이 임박해지면서 3인3색의 후보들이 저마다 복지 포퓰리즘 공약을 쏟아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강경식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1960년대까지 적자 재정으로 극심한 물가고를 겪은 정부가 건전재정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박정희대통령의 지시 사항마저 슬그머니 예산 편성에서 빼는가 하면 국방부 예산을 삭감 말라고 권총을 들고 찾아온 육군 준장의 위협을 묵살한 살벌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런 제로베이스 예산, 세출 예산동결이라는 극약 처방이 마침내 80년대 건전 재정을 이뤄 오늘의 경제발전 동력으로 쓰인 것이다.

DJ정권에서 경제를 총괄했던 강봉균 전민주당의원은 3선 재임시 건전 재정에 관한 입바른 소리를 불사했고 이날도 포럼 공동 대표 자격으로 지금 문제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경쟁 규칙의 불공정성’임을 내내 강조했다. 후보마다 무분별한 복지 확대를 내세울 게 아니라 재벌들이 흐려놓는 ‘경쟁 규칙의 불공정성’을 바로잡아 일자리 늘이는 게 더 급한 복지정책이라고 말했다. 너도 나도 복지 확대로 적자 재정국가가 되면 현재 남유럽 제국이 겪는 국가 파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과거 군사정부와 민주화 초기 정부들이 그나마 지켜온 건전 재정을 민주화 성숙 단계인 지금 깨어서는 안된다. 퇴직해도 임금의 90% 가까이 받는 국가, 실업 수당등 각종 복지로 먹고 살 수 있는 나라에서 누가 일을 하려 할 것인가. 눈먼 돈 챙기기에 몇 년간 나라가 올인하다 보면 결국 재정은 파탄나고 그나마 있던 일자리도 없어지기 마련이다.

과거를 ‘좋지 않았던 일부 과거사’ 때문에 완전 무시하고 홀대해서는 2차대전 후 유일하게 후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이른 우리의 ‘좋았던 과거 치적’까지 사라지고 만다.

‘오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미래’도 과거와 오늘이란 대지 위에 굳건히 다리를 뻗칠 수 있는 것이다. 전라도에서 태어나 삼대째 파란 눈의 호남 사투리를 쓰는 한국인으로 살며, 한국인보다 더 잘 한국을 아는 세브란스의대 출신 의사 인요한박사가 최근 답답한지 가슴의 말을 뱉어내고 있다.

요지는 박정희 전대통령의 유신체제 등 과오를 계속 꺼내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지만 그가 있음으로 해서 한국이 5천년 보리고개를 극복하고 조선 1위,IT산업 1위, 철강 1위등 산업화 강국을 이뤄내 마침내 민주국가로 성장하는 게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또 근로자들의 근면성, 여자들, 특히 어머니들의 역할이 오늘의 한국을 이루는 바탕이 되었다고도 한다. 하루 16시간 이상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 근로자들의 산업병 따위는 당시 고려할 처지가 아니었다. 여성들은 파독 간호원에 나섰고 머리털까지 잘라 가발로 파는 맹렬함을 보였다. 이 모두 근로와 절약, 공동체 정신을 일깨운 새마을운동 등에 기인한 바 크다. 박전대통령의 청렴성도 한몫을 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국가 위기시 지도자의 현명한 단호성이 두드러진다. 거듭 말하지만 미국이 예수 다음으로 거의 성자시하고 있는 링컨대통령은 남북전쟁 발발전 신문사 300개를 문 닫았고 대법원장을 불러 감옥 운운 위협하는 등 극단적 처방을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가 대법원 판결 몇 시간만에 사형집행한 우리의 유신 시절 인혁당 사건을 덮지는 못하겠으나 모름지기 국가 지도자라면 비상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러니까 과거는 공과 과오를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미국은 당시 시대성을 감안해 링컨의 과오는 땅에 묻은 채 지금도 링컨기념관에 가면 그의 위대성만 강조되고 있다.

과거사 정리는 필요하되 자꾸 되풀이해서는 안된다. 불만자가 있다고 거듭 이를 꺼내면 오늘과 내일이 피해를 본다. 그 때 그 때의 시대성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내일을 잘해보겠다는 대선 후보자들이 건전 재정을 깨는 행위를 공공연히 하고 과거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게 너무 뻔히 보여 답답하다. 이를 식별하지 못하는 유권자는 더 안타깝다. 건전재정 포럼 발족이 이를 얼마나 희석시킬지 주목한다.